[인간극장] KBS 방송 꼬마신랑, 아내가 핸드폰에 저장해둔 이름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아이들을 곁에서 돌보기 위해 서울을 떠나 경북 울진으로 내려온 슈퍼맨 아빠 광현 씨

방송일: 2026. 6. 12. | KBS 인간극장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장면1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장면2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장면3
큰딸이 떠나고 난 자리는 며칠 동안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광현 씨는 그 빈자리를 안고 자전거에 올라, 아내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달린다. 꼬마신랑, 아내가 핸드폰에 저장해둔 이름이었다.
  • 비 오는 날에도 강행된 전복 종패 양식장 작업
  • 취업 준비를 위해 떠나는 지윤 씨를 배웅하는 길
  • 아내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달리는 자전거
  • 손빨래로 시작하는 아침, 흰 양말만 남은 서랍
  • 둥지를 떠난 새들, 그리고 다시 문을 연 치킨집

비가 와도 가야 한다고 했다

급한 호출을 받고 광현 씨가 차에 올랐다. 구산. 양식장에서 일이 있다고 했다.

"원래 취소됐다가, 어촌계장님이 비가 와도 강행해야 한다고 해서요. 안 그랬으면 안 할 건데, 가봐야죠."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는 곳이었다. 작업이 있을 때마다 불러줘서 늘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울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은 곳이기도 했다.

이곳은 전복 종패를 키우는 양식장이었다. 지자체에서 바다에 씨를 뿌리는 사업을 하는데, 그 종자를 키우는 일이었다. 5천 개씩 지원받아 바다에 뿌리면, 어촌계에서 나중에 수확해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그동안 키운 아기 전복들을 추리는 날이었다. 마구잡이로 담으면 될 것 같아도, 은근히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너무 세게 하면 깨질까 봐 조심조심해요."

전복도, 사람도. 어린 생명들은 세심한 보호가 필요했다.

작업이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광현 씨를 부르는 건, 특유의 성실함을 높이 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텔에 치킨집에 식당, 거기에 양식장 알바, 풀베기까지. 한 다섯 가지는 넘는 거 같다고, 동료가 말했다.
"애들이 꿈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는 해줄 수 있어야죠."

고생했다, 라는 말

평소보다 물량이 적어 일찍 끝났다.

"수고하세요."
"고생했다."

처음 이 일을 했을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고 했다. 못 하면 다음에 안 불러줄까 봐 엄청 열심히 했었다고. 첫날 두세 시간 작업하고 들어와서, 그날 거의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고 했다.

뭐든 하다 보면 늘고,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혼자서 부모의 자리를 지키는 일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 *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지윤 씨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해서, 당분간은 내려오기 힘들 것이다.

"올게요. 바이바이."

차가 떠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한동안 허전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지윤이가 왔다 가면 제일 마음이 허전한 거 같다고 했다. 취업 준비한다고 이력서 내러 간다니, 걱정도 되고,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고, 원래 원했던 곳에 들어갔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

부모 마음이야 그저 자식 잘되기만 바랄 뿐이다.

혼자 보는 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여유가 있었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펜션을 할 때는 손님이 없는 평일에 종종 탔는데, 요즘은 통 탈 시간이 없었다.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나올 때면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할 때, 어딘지도 모르고 들렀던 곳. 아내가 한강 쪽 큰 병원에 다녔는데, 진료가 끝나고 다리를 건너 집으로 오는 길에 라이딩하는 그룹이 지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머리 복잡할 때 좋겠다 싶어서, 중고 마켓에서 자전거를 사서 연습했다고. 그러다 보니 취미가 됐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보던 바다를, 이제는 혼자서 본다. 아내의 빈자리는 크지만, 채우려 애쓰고 있다.

"잘하고 있다 하겠죠, 뭐. 대견하다고. 와이프가 핸드폰에 저장하기를, 꼬마신랑이라고 저장해놨거든요."

꼬마신랑, 수고했다. 그렇게 말해줄 것 같다고 했다.

올 땐 힘겨웠던 오르막이, 돌아갈 땐 편안한 내리막이 된다. 지금의 고단한 시간들도, 언젠가 빛나는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
* * *

흰 양말만 남은 서랍

다시 찾아온 아침, 광현 씨가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불하고 양말만요. 나머지는 그냥 세탁기 돌리는데, 양말하고 속옷은 손으로 애벌빨래 안 하면 더럽더라고요."

아기들이 어렸을 때는 그림 그려진 양말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우가 조금 크면서, 깔끔한 흰색을 좋아해서 그렇게 사다 보니, 이제는 다 흰 양말이 됐다고 했다.

아이들 차림새가 항상 말끔하고 단정한 건, 모두 아빠의 노력 덕분이었다.

아내에게 배운 노하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뭐라도 먹여야 했다. 오늘은 멸치 김밥이다.

"아기들이 김을 되게 좋아해요. 김자반 주먹밥도 자주 했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먹어버서 그런지, 김으로 해주면 다 잘 먹어요."

알게 모르게 아내에게 배운 노하우가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배워둘 걸, 후회가 된다고 했다. 머리 묶는 것도 그랬다. 손이 커서 마지막에 꼭 끈을 놓친다고 했다. 아내가 떠난 후 어려웠던 일 중 하나가, 딸들 머리였다.
"전쟁입니다. 전쟁이에요, 전쟁."

어릴 때에 비하면 등교 준비가 한결 수월해졌다지만, 그래도 아침은 늘 정신없고 분주했다. 언젠간 이 전쟁 같은 아침도 그리워질 것이다.

* * *

자재값 90만 원

그날 오후, 마당 한쪽에서 광현 씨가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딱히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사정없이 잘라낸다.

"생각하는 대로 짧게 짧게 하는 거라, 만들어서 보면 딱 맞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대충 대충, 빠르게 하는 거 같아요."

울진에 내려오기 전, 광현 씨는 10년 가까이 작은 가구 공장을 운영했다. 그때 갈고 닦은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

치킨집 내부의 목공 인테리어도 모두 광현 씨의 작품이었다. 벽면을 다 하려면 자재값만 천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했다. 목재상에서 직접 나무를 사니, 90만 원 정도면 됐다고 했다.

재개장을 앞두고 보조대가 순식간에 완성됐다.

다시 문을 연 치킨집

며칠 후, 드디어 치킨집이 다시 열렸다. 브랜드를 바꾸느라 한동안 쉬었던 곳이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손님도 배달도 많았다.

"바삭 순살 하나에 요거 하나만 드리면 될까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혁 씨도 발에 불이 났다. 어느덧 마감 시간.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여기 가면 마음이 쉴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가끔 어려울 때 편하게 와서 얘기할 수 있을 만큼, 그런 자리가 되어주고 싶다고.
* * *

이소

새소리로 요란하던 우편함이, 오늘은 어쩐지 조용했다.

"새끼들이 이소를 해버렸어요. 밤사이에 어미새가 옮긴 건지, 이소를 한 건지, 갑자기 없어졌네요."

둥지가 텅 비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먹이를 날랐는데, 애들이 금방 컸는지 떠나버렸다고 했다.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새들이 아쉬워, 자꾸만 들여다봤다.

언젠가 아이들도 광현 씨 품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살다가 지칠 때, 언제든 와서 쉬어가길 바란다. 그 마음은 떠나간 새들을 보는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빠가 더 잘 놀아줄 텐데

햇살 좋은 주말 오후, 아이들과 산책에 나섰다.

아빠, 아빠, 가만히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 아이들과, 어색하게 서 있는 아빠. 못 찍었어, 왜 못 찍었지. 그 팁은 광고 찍은 거 같아.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게 조금 있으면 안 놀아줄 텐데."
"아빠가 안 놀아주지 않아."
"너 아빠가 지켜볼 거야. 나중에 친구 만난다고 늦게 들어오고."
"그거는 못 해요. 나도 친구는 있어야지."

지우와 지아는 그늘 한 점 없이 밝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다.

"이쁘게 잘 컸으면 좋겠고요. 클 때까지 잘 안아주고, 재롱 봐주고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한 아이가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행복하게 살고, 담배 그만 피고, 술 그만 먹고, 건강해야 돼."
"건강하고 행복해야 돼."
"알겠어."
난 자리는 왜 더 크게 느껴질까요.
큰딸이 떠난 후, 자전거를 타고 아내와 걸었던 길로 향했습니다.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은, 그 자리를 자꾸 들여다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침마다 손빨래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내에게 배운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배워두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매일 아침의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내민 작은 카드에는 왜 건강과 행복만 적혀 있을까요.
거짓말처럼 들릴 만큼 단순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가장 단순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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