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몰래 트랙터를 보러 다녀온 해순 씨. 마음에 걸린 듯 스스로 털어놓는데...예상대로 아내 영남 씨는 못마땅해하며 반대한다!
방송일: 2026. 7. 7.



마당 가득 꽃이 피고, 트랙터 한 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 낡은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고쳐 신는 부부가 있습니다
- 오일장에서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걸음이 있습니다
- 마당 가득 핀 꽃을 나누어 주는 손이 있습니다
- 남편이 혼자 감추고 온 것이 있었습니다
새벽, 세면대 앞에 놓인 낡은 신발 한 켤레
마당에 볕이 채 들기 전이었습니다. 시골집 마루 끝에는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밑창이 떨어져 나간 자리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못 이긴 척 자리를 떴다가 이내 연장통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흙먼지를 털어내고, 낡은 밑창을 하나씩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놀리는 그의 옆에서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남편 막 뭐라 해요?"
"어, 궁상맞게 뭘 그러냐는데. 이건 궁상이 아니에요. 시골에서는 재활용해서 써야 맞아요."
일할 때 가장 편한 신이 따로 있다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새 신을 사는 대신, 신던 신을 다시 신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대꾸 없이 손끝에 힘을 주었습니다.
백 년 된 집도 고쳐 쓴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발 한 켤레쯤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점심이 지나면, 두 사람은 나란히 걷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두 사람은 어디론가 나설 채비를 했습니다. 오늘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으려는 아내를 남편이 말렸습니다. 이럴 때만큼은 남편이 손도 까딱 못 하게 했습니다.
장터에 들어서자 아내의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개피 값을 흥정하는 소리, 여기저기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뒤섞였습니다. 이웃 어르신이 부탁한 개피를 사러 온 참이었습니다.
칼국숫집에 마주 앉았을 때, 아내의 눈길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옆 가게에 붙은 짜장면 가격표였습니다.
"짜장면이 4,000원이야."
"다음에 짜장 와서 이거 먹어볼까?"
그저 궁금해서 본 것이라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반찬가게 앞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할 뿐, 정작 사지는 않았습니다.
대책 없이 사들이는 사람, 구경만 하는 사람
농기구 상회 앞에서 남편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전지가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습니다. 정원용 가위를 살피던 남편에게 아내는 못마땅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장비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들여도 워낙 많이 쌓아 두어서 오늘은 구경만 하고 돌아가는 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아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습니다. 단골 꽃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아내에게 평소보다 많은 꽃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돼요?"
"덤까지 주고. 너무 좋다."
허리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꽃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랜 지인이 다녀간 자리에는 꽃이 남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지인이었습니다. 손에는 먹을거리가 잔뜩 들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예전에 함께 와서 대문을 손질해 주고 꽃을 나눠 준 일을, 지인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밖에서만 구경하고 마당 안쪽은 미처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디갈리스라는 꽃 앞에서 지인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꽃송이 안에 그림이 들어 있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피어 올라가는 방식이라 밑동에서부터 위로 색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오늘도 어김없이 정성 들여 가꾼 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봉지를 하나 더 채워 건네며, 혼자 보면 아깝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보고 웃어야 진짜 꽃 구경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엄청 얻는데 힘들었지만,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주는 거예요."
"주고 싶어도 심을 데가 없으면 못 주죠."
남편이 사라진 자리, 농약통을 메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다녀간 사이, 아내가 남편을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방금까지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자두밭에서 농약을 치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면 수확해야 할 자두였습니다. 유일하게 현금이 되어 주는 농작물이었습니다.
혼자서도 잘하는 남편이었지만, 무거운 짐만큼은 둘이 나누어야 했습니다. 농약을 칠 때는 아내의 손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문득 손을 멈췄습니다. 다일밭에 쓰는 농약 살포 기계 하나가 마당 한쪽에 서 있었습니다. 산비탈 밭이라 오히려 불편하고, 약이 많이 새어 나가 중고로 들여왔다가 고장이 잦았던 기계였습니다. 몇 번이나 수리를 맡겼다 되찾아 온 물건이었습니다.
오이 두 개, 그리고 서로의 손
저녁상을 물린 자리, 남편이 오이 두 개를 꺼내 왔습니다.
"자기, 이게 뭔지 알아?"
"오이요? 오이는 어디다 쓰는지 알아?"
얇게 썬 오이를 얼굴에 올려 주는 남편의 손길이었습니다. 시원해서 잠이 잘 올 거라며, 눈을 감으라 했습니다. 아내는 몇 조각 남은 오이를 슬그머니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떨어지는 오이를 자꾸 집어 먹는 아내 때문에, 남편은 일부러 조각을 잘게 썰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개구진 아들과 엄마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말하지 못한 하루, 트랙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같은 날 낮, 남편은 다른 곳에 다녀온 참이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살던 사람이 트랙터를 처분하고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습니다.
트랙터가 있는 집 앞, 남편은 오래 벼르던 걸음으로 다가갔습니다. 페인트가 조금 벗겨졌을 뿐, 큰 흠은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직접 운전대에 올라 손에 익혀 보았습니다. 엔진 소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미 마음은 반쯤 넘어간 뒤였습니다.
"어머님은 알고 계세요?"
"몰라요. 아직 말 안 했어요."
집 앞까지 마중 나온 아내에게, 남편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는 말에 얼버무리며 답했습니다.
"친구네 좀 다녀왔어."
"거기 뭐 있었어요?"
"가져올 거. 건강해야 되지."
저녁 밥상 앞에서도 말은 자꾸만 겉돌았습니다. 시곗바늘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꺼내 놓은 말, 그리고 단칼의 거절
더는 미룰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을 좀 팔았는데, 거기 트랙터가 하나 있더라고."
"당신 사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내의 대답은 길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단했습니다. 트랙터를 사는 순간 무언가 끝나 버릴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비가 올 것 같다고, 아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남편은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마당의 꽃들은 그 말과는 상관없이, 저마다의 속도로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