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 기일을 맞아 영남 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웃음과 정을 나눠본다.
방송일: 2026. 7. 10.


새벽부터 꽃밭에 물을 주고, 저녁이 되어서야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진의 어느 마을, 오남매 중 셋째로 자란 영남씨는 부모님이 가꾸던 백 년 된 꽃밭을 지금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을의 갑작스러운 회의와,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이는 하루를 따라가 봅니다.
- 저녁밥도 미룬 채 이장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는 아침이 있습니다
- 천장이 내려앉은 자리를 손수 메꾸며 하루를 보내는 부부가 있습니다
- 두 시간을 달려온 딸이,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명절 같은 냄새를 맡는 날이 있습니다
- 자두밭에서 시작된 돈이 아프리카의 우물이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오는 아침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마당 가득 꽃향기가 실려 왔습니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시간, 부엌문이 먼저 열렸습니다.
오늘은 제철 완두콩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콩 농사를 짓는 이웃들이 가끔 이렇게 가져다주고 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땀 흘려 지은 것을 파는 모습을 보면, 값을 깎는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진 마늘과 양파를 앞에 두고, 남편은 오래된 손놀림으로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양파를 너무 잘게 다지면 수분이 많이 생겨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도, 오랜 세월 부엌을 드나들며 배운 요령이었습니다.
"맛있냐?"
간장 볶음 양념장만큼은 아내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있다는 말이, 그날따라 유난히 자신 있게 들렸습니다. 향이 좋아 밥을 비벼 먹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밥도 미룬 채, 이장님의 부름을 받다
시골에 살다 보면 자연재해나 마을 대소사로 갑자기 소집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저녁도 채 챙기지 못한 채 나서야 하는 걸음이었습니다.
"땅이 그 헌한타는 분이 다 매입을 했어요. 인허가가 안 됐을 적에는 어차피 취소가 되고, 조건부로 아마 계약을 했을 거예요. 어려우셔도 반장님들한테 말씀드릴 테니깐, 각자 이제 한 장씩 돌려드릴 테니까 그것만 해 주시면 돼요."
누군가 다시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또 땅을 사서 장례식장을 쓰는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도, 이 장례식장이 3월이 되면 폐지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본인들도 알아요. 대충은 그랬지만, 완전히 한다고 확답을 안 했기 때문에."
회관 안 공기가 잠시 무거워졌습니다. 누군가 낮게 한마디를 얹었습니다.
"이걸 한다고 그러면 그게 또…"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서로를 챙기는 인사가 오갔습니다.
"쓰셨어요, 이장님." "예,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밥 먹으라 보낼게요." "네."
자주 만나다 보니 어느새 제 식구처럼 서로를 챙기는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천장이 내려앉은 자리, 손이 가는 만큼 정이 쌓인다
저번에 하얀 덩어리가 뚝 떨어졌을 때, 어디서 떨어진 건지도 몰랐습니다. 핀 시멘트를 개어 천장을 보수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해 놓고 나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하나 손이 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어, 됐다. 어, 당신 맞네. 저쪽 건 또 돼 있었어. 아까 실 이런 거 맞추기가 꼼꼼해야 돼요. 아, 이쁘게 나오네. 땜빵 잘 되네."
두 시간을 달려온 딸이, 부엌은 다시 명절이 된다
누군가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오남매 중 첫째, 서울에 사는 언니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언니. 오늘 시간 얼마나 걸렸어요?" "두 시간 걸렸어. 아이, 얼마 안 걸렸어요." "식사하셨어요?" "먹었어."
아홉 살 터울의 언니였습니다. 오늘은 친정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내려온 걸음이었습니다.
"조금이 하나 더." "아니, 웬 고생이야?" "아유, 사서 고생하고 있어, 지금." "우리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서 고생해."
언니는 자꾸만 미안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집이 조금씩 이뻐지고 있다는 말에도,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아 보였습니다.
"이거 그냥 놔뒀으면 이거 다 물어냈을 거예요. 우리 제부가 너무 부지런하셔. 이런 분도 없어요."
해순씨 덕분에 친정집은 되살아났지만, 그 수고가 못내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냥 계속 일이 안 끝나네. 고생했어." "시골 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까." "그렇다고 몸 축내지 말고, 허리도 안 좋다며." "허리 아파서 오늘 병원 갔다 왔잖아. 주사 맞았어."
형부가 더운데 오시느라 애쓰신다는 말에, 마무리 일을 끝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습니다.
"고마워." "아이고, 먼 걸음 하시느라고."
꽃을 볼 때마다 언니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잘 가꾼 것이 좋으면서도, 이걸 가꾸느라 동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따라붙었습니다.
"언니, 걱정돼서 그러지." "그럼 걱정되지, 나이가 있는데 이제. 손이 덜 가는 꽃나무로 심어 가고 있어. 형제들한테 근심 주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지혜롭게 잘해 가고 있다니까."
부모님을 오래 모신 영남씨 부부 덕분에, 다른 형제들은 그만큼 걱정을 덜고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언니는 대단한 게, 결혼해서 시댁에 시어머님도 계셨고 시동생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러다 친정 엄마 아버지까지 모셨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근데 기쁨으로 너무 잘 모셨거든요. 저희들이 너무 형부한테 감사하죠."
영남씨는 그 말에 조용히 웃었습니다.
"저는 그거를 기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 생신날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돌아가신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이 되어서 또 다른 시작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나이 되면 갈 데가 없어요. 다들 엄마들 돌아가시고 안 계시잖아. 근데 우리가 살던 고향을 또 이렇게 올 수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그때 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어서 와, 가연아. 며느리 왔어? 어디 있어요?" "안녕하세요." "아들 왔어." "다 왔어요."
공주에 사는 둘째 아들네가 도착했습니다. 조용하던 집 안이 금세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이렇게 많이 컸냐. 인사, 할머니한테 인사." "네." "와, 우리 가연이 이렇게 컸어." "이모한테 안녕하세요." "육 학년이라고? 이렇게 많이 컸어. 예쁘게 컸네."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언니의 아들, 조카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거 입다, 상추도 뜯어 가. 이건 이제 불수하고, 조금 있으면 핑크꽃이 피고, 장미는 졌는데 또 필 거야. 이쁘지?"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밭 앞에서, 손주들은 오자마자 눈호강부터 했습니다.
"수연이 가연이도 이거 같이 심었지. 수선화도 그렇고. 걔들이 얼마나 재밌게 심었어, 너 알지?" "그럼요, 어머니. 어렸을 때요."
"출산하고 했을 때도 제가 직장 생활을 하니까 어머님이 애들 다 봐주셨거든요. 몇 년생 나타니까 아기 둘 다 막 여기 데려오시고. 그래서 여기 보면 수연이 가연이가 심은 꽃도 많이 있어요. 어머님이 사랑으로, 교육적으로 꽃도 심고 하니까 저는 덕을 많이 봐서 항상 부족한 면을 채워 주셨어요."
아픈 허리와 맞바꾼 애정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이 꽃대궐에 모이는 가족들에게는 오늘이 곧 생신 같은 날이었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우리 며느리,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맛있다."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흔적일지 모릅니다.
"미역국 맛있어." "너무 맛있지." "엄마 거보다 훨씬 맛있대."
딸에게는 어릴 적부터 드나든, 추억이 담긴 장소였습니다.
"여기가 원래 밤나무산이었어요. 그래서 막 밤 줍고 그랬던 기억이 나거든요."
자식과 손주들에게는 추억이 담긴 집이지만, 두 분이 고생하는 모습은 늘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원래 살던 집이 대전인데, 이 당진을 와서 지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항상 얘기해요, 좀 내려놓고 쉬면서 지내야 된다고. 그런데 두 분이 너무 즐겁게 사시니까, 본인이 행복하게 지내시니 저는 더 할 말은 없죠."
열네 해째 되는 아침, 꽃 앞에 선 사람들
다 같이 손을 잡고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기다려 주네. 저기 엄마다." "엄마, 우리 왔어요." "할머니 왔어요." "이거 향기 한번 맡아 봐."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고향이었습니다.
"엄마가 너무 생각나고, 엄마의 그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꽃 가꾸는 거, 이웃들에게 나눠 주던 그 마음을 언니가 대전에서 해 주니까, 저희로서는 감사하죠."
영남씨를 통해 그 사랑은 또 다른 세대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잡았어요. 자, 찍을게요. 하나, 둘, 셋. 한 번 더." "어머니가 볼게요. 아버님, 먼저 가서 죄송해요."
돌아가려는 걸음마다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연아,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좋겠네, 좋겠어. 감사합니다." "몸조심해." "네, 갈게요." "얘들아, 할머니 인사했어? 안 했어?" "했어." "그래, 잘 가."
부모님 또한 당신들의 자식을 그토록 귀하게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부모님께 다 갚지 못한 마음이, 이제는 자식에게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많이 뜯었어." "이모 할머니 하세요." "너 이거 찍어 왔어. 나는 안 줘." "고맙습니다."
택배로도 자주 오가는 정이 있었습니다. 사과며 배며, 김장철이면 김치까지 이렇게 나누어 왔습니다.
"저희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없어요. 어머님이 이모들 중에 제일 먼저 가셨는데, 그 어머니 같으세요, 그냥. 전화도 자주 주시고, 별일 없냐고 물어봐 주시고."
"안녕." "사랑해." "또 와." "너무 잘 먹고 가요." "우리 이뻐, 고맙다, 고마워."
어머니를 일찍 여읜 조카에게도, 이곳은 마음의 안식처와 다름없는 자리였습니다.
"도착하면 전화해요." "언니, 문자로 해." "몸조심이야."
마지막으로 큰언니를 배웅했습니다.
"지금도 요렇게 여기 계시는 거 같아, 이 공간 속에. 이 공간 속에 엄마가 계신 거 같아요. 참 놀라워요. 이런 추억보다는 엄마가 이 공간 속에 꽉 찬 느낌이에요. 엄마 대신해서 제가 배웅하는 느낌."
자두밭에서 시작된 우물 하나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오는 아침, 부부는 어김없이 밭으로 나섰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러 온 곳, 여든 그루의 자두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밑이 또 꼬고, 당신은 오이까? 이거 작고 벌써 벌레 먹었어." "벌레 먹었다 소리 하지도 마." "그것도 작아서 소용 없어." "내가 알아, 알아." "근데 벌레 먹은 거 소리 하지 마. 난 막 가슴이 철렁철렁해."
자두 농사는 꽃밭만큼이나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키우려고 노력하니까 얘들도 그 보답을 하지 않을까요. 늘 저는 이 밭에 오면 기대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자두 수입을 통해서 저 어려운 나라, 물이 없는 나라에 우물을 파는 일을 하거든요. 이 농사를 잘 지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물을 먹을 수가 있어요. 우리 남편이 값지게 쓰자 해서 그렇게 하는데, 올해는 모든 게 늦어져서 조금 걱정이네요."
하나둘 파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우물이 어느새 열두 개가 되었습니다. 손주들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부부는 우물 삼백 개까지 파 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얘들도 사랑 안 주고 그냥 흙에다 던져 놓으면 절대로 안 자라요. 좋은 흙을 주고, 물 주고, 다듬어 줄 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은 사람은 생활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오늘 심은 꽃 한 포기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정성으로 가꾼 꽃밭은 마침내 누군가의 쉼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우물이 되었습니다. 나눌수록 더 큰 행복으로 채워지는 영남씨의 백 년 꽃대궐은, 오늘도 그렇게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