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꽃을 좋아하던 어머니를 위해 꽃밭을 일궈낸 영남 씨. 그 집은 어느새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만인의 사랑방이 됐다
방송일: 2026. 7. 6.



스크립트 원문
자막 없음
- 새벽부터 마을회관 앞에 모여 꽃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지나가던 낯선 이가 차를 세우고 꽃 사진을 찍어 가는 집이 있습니다
- 폐가가 된 친정집을 2년에 걸쳐 다시 세운 부부가 있습니다
- 돌아가시기 보름 전, 그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 밑창이 다 떨어진 신발을 그래도 본드로 붙여 신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흙빛으로 굳어 있던 하늘
날이 굳더니 결국 새벽부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일정에 차질이 없어야 할 텐데, 영남 씨의 머릿속은 벌써부터 복잡해집니다.
부녀회 주관으로 마을 사랑 운동을 벌이는 날입니다. 올해는 남자분들까지 불러 마을 풀을 깎기로 했습니다. 마을 회관 앞엔 벌써 누군가 나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몇 달 전부터 집집마다 연락을 돌렸던 영남 씨입니다. 부녀회가 주관하는 일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모임은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영남 씨가 부녀회장이 되면서 마을길에 꽃을 심는 아이디어를 낸 뒤로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마을 사업입니다.
모종을 나르는 손길 사이로 영남 씨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여기는 남자분들이 좀 도와주라.”
“지금은 우리가 저 밑으로 가서 풀매기만 하고, 총무님은 여기 기다렸다 오면.”
“중간중간에 나눠서 하라.” “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아휴, 우리 남편은 또 왜 저리야. 또 뭔가가 섰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지, 남편은 모종을 더 가까이 내려 달라 했습니다.
“설이 올 때까지 제일 오래 가는 꽃을 심는 거예요.”
이렇게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이 일을 냈을 때 얼렁얼렁 해결을 빨리 봐야 돼요. 농번기라 너무 바빠서 죄송하잖아요.”
“해결해서 신났다.” “아우, 머리가 얼마나 아팠는데. 신경 쓰여서. 총무님, 힘 났어.”
한 달 후면 꽃길이 피어날 마을입니다. 주민들에게도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지나가다 세우게 되는 집
꽃이 만발한 영남 씨네 집. 그 앞에 낯선 이가 차를 세웠습니다.
“여기요? 맞춰보세요. 무슨 집 같아요?”
“몰라요, 나 지나가는데 집이 너무 예뻐서 세우라 그랬어요. 이 집 너무 예쁘니까 사진 찍어 가려고.”
영남 씨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여기 꽃집이라고 불러 주네요. 꽃이 많다고.”
왜 어떤 집은 지나던 사람의 발길마저 붙잡는 것일까요. 자연스레 피어난 듯 보이지만, 마당의 꽃은 전부 영남 씨가 하나하나 심고 가꾼 것들입니다.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이 60여 종에 이릅니다.
“이거 누가 관리하시는 거예요?” “아, 제가 해요.”
“오, 대단하시다. 무슨 농원에 온 거 같죠?”
“이런 집에 살면 인생 자체가 풍요롭죠.”
손님이 떠나기 전, 영남 씨는 꽃 한 다발을 꺾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가세요. 저는 이 꽃 나눔이 제 소원이에요. 저만 이렇게 꽃이 있는 게 아니라 집집마다 꽃이 있으면 좋겠어서요.”
“저를 기억해 주실 거죠?” “그럼요. 이거 꼭 잘 키워 볼게요.”
방 한 칸을 데우는 장작 냄새
온통 꽃밭인 마당만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사는 집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겨울엔 난방 되고요. 이 정도 방에 냉기가 있어도 장작 몇 개 넣고 나면 따뜻해서 지낼 만해요.”
방 한 칸을 데우는 것은 나무 한 아궁이입니다. 여름엔 시원하다 못해 저녁이면 춥기까지 한 황토집, 100년 세월이 묻어 있는 보와 기둥. 영남 씨가 유년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이 집 서까래가 다 가짜예요. 석가래가 무너진 거를 판자 넣고 다시 흙 매장하고 칠하고, 너무 흉해서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그랬어요.”
“근데 이거 다 누가 수리하시는 거예요?” “저희 남편이요. 근무하고 휴일 날 와서 잠깐씩 하는데, 고생 엄청 많이 했어요.”
어느 날부터 밖으로만 나가자던 어머니
영남 씨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때가 엄마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모습이에요.”
어머니는 치매 1급 환자였습니다. 평소엔 딸의 말을 곧잘 따랐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달랐습니다.
“제 말도 안 듣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자는 거예요. 환자를 데리고 어디를 가요.”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당진 헐고 저기 방 하나만 수리해서 잠깐만 쉬었다 오는 거 하면 안 될까?”
남편은 장모가 보채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라.”
그렇게 폐가가 되어 버린 낡은 친정집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일일이 남편 손으로 고치는 데 2년이 걸렸고, 노후 자금을 쏟아부은 끝에 11년 전 지금의 집이 완성됐습니다.
다섯 남매를 키워낸 공간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셨을까요. 어머니는 사위 손을 꼭 잡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으셨습니다.
“여기 오면서 어머니가 안정을 찾는 거예요. 너무 좋아 가지고, 유리문 달고 이런 거 다 하는데 좋아서 ‘사위가 그렇게 좋으냐, 여기가 누구 집이냐’ 물으니까 ‘우리 딸 집’이래요.”
“엄마 건강해서 우리 여기 와서 살자, 이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마지막 추억도 담겨 있어요.”
부자로 살았던 6년
길었던 하루가 저물고, 부부는 서로의 몸을 챙깁니다.
“아이고, 파스 주세요.” “일단 오른쪽 돌아 봐.”
“당신 진짜 잘하네.”
늘 한결같이 다정한 남편입니다.
“저희 남편이 원래 자상해요. 아기들 클 때 목말 태우고 그랬어요.”
고향 당진을 떠나 대전에서 살았던 영남 씨는 공무원이던 남편 해순 씨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며 알뜰살뜰 살아왔습니다.
“초창기엔 고생 좀 했지요. 제 직장 급여가 얼마 안 돼서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고, 어머니하고 같이 사느라.”
“우리 부자로 살았어.” “뭐가 부자예요.” “저축해서 결혼 6년 만에 집을 샀잖아. 적다고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결혼 후 처음으로 두 사람만 살게 된 지금에서야, 영남 씨는 이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됐습니다.
“이거 진짜 넝쿨장미네.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너무 감사하다.”
그저 꽃을 보여 드렸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늘 뜻밖의 인연이었습니다.
“방문하신 분들이 다시 동역자가 되는 거예요. 꽃도 사다 주고, 영양제도 사다 주고, 제가 바빠서 못 하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매일 오르는 언덕, 낡은 신발 한 짝
장미를 심고 난 후, 영남 씨는 집 뒤편 언덕을 오릅니다.
“엊그제 올라왔는데 또 이렇게 잘 자랐네.”
매일같이 찾는 이곳엔 영남 씨의 부모님이 잠들어 계십니다.
“엄마, 이제 내가 여기 오르기도 힘드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이 집 구석구석에 꽃을 심어 가꾸셨습니다. 삶이 비록 팍팍해도 자식만큼은 예쁜 것을 보고 살길 바랐던 마음을, 곁을 떠나신 후에야 깨닫습니다.
“저를 노년에 이렇게 베풀고 나누고 살으라고 데려다 놓고 하늘나라 가신 거예요.”
오후가 뜨거워졌습니다. 밭에 그물망을 설치할 때가 되었습니다.
“내가 낄까?”
귀촌하면서 처음 시작한 농사, 손재주 많은 남편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집 짓는 거, 설계하는 거, 설비하는 거, 전기 공사, 재능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영남 씨의 걸음걸이가 어째 편치 않아 보입니다.
“이게 자꾸 떨어지고, 오래 신다 보니. 그래도 작업신으로 아까워서.”
한눈에도 밑창이 다 떨어진 신발입니다. 그래도 고쳐 신겠다고 합니다.
“버려, 버려.” “아니야, 이거 작업 복신으로는 딱 맞다고. 본드 어디 있어요?”
씨가 저만치 앞서 걸어갑니다. 낡은 신발 한 짝을 손에 든 채로, 영남 씨는 오늘도 뒤를 따라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