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KBS 방송 자기 멋에 산다 예고편: 광천 씨에게는 든든한 동반자 쌍둥이 형과 아내가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47년을 달려온 여주시 도예 명장 광천 씨. 광천 씨에게는 든든한 동반자 쌍둥이 형과 아내가 있다

방송일: 2026. 7. 10.

이 시대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47년을  장면1이 시대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47년을  장면2이 시대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47년을  장면3

가을 아침, 개를 앞세우고 산책을 나서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여주에서 47년째 흙을 빚어 온 도예 명장 광천씨는 오늘도 물레 앞에 앉습니다. 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형과, 40년을 함께한 아내, 그리고 아버지의 길을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 물레를 돌리는 손보다, 가마 앞을 지키는 마음이 더 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수십 점을 빚어도 살아남는 건 몇 점뿐인 하루가 있습니다
  • 5분 먼저 태어난 형이, 평생 동생의 그림자처럼 곁을 지킨 이야기가 있습니다
  • 흙만 빚던 아들이 공장으로 출근하며 아버지에게 지은 마음이 있습니다

느리게 드리워진 아침 햇살

느리게 드리워진 아침 햇살이 마당을 가로질렀습니다. 가을도 이제 끝자락이었습니다. 개가 먼저 몸을 흔들며 주인을 잡아끌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니 하루도 거를 수가 없었습니다. 진돌이를 운동시키는 게 아니라, 진돌이가 그를 운동시키는 셈이었습니다.

냉기에 뒤섞인 낙엽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고 나서야 아침 산책이 끝났습니다. 밥그릇 앞에 앉은 개에게 물을 주는 그릇마저도, 손수 빚은 백자였습니다.

"요건 그 반려견 식기로 내가 조선 백자로 깨끗하게 해서 빚은 거야. 무거워서 이 녀석이 뒤집어 놓지도 않고."

어쩔 수 없는 주인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광천씨는 도예가였습니다. 그것도 여주시가 선정한 도예 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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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점을 빚어도, 살아남는 건 몇 점뿐

작업장 안, 수분을 완전히 빼는 과정을 지나야 초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터지는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였습니다.

"이런 데는 미련을 두지 말아야 돼. 잘못된 거는 용납을 못해."

흙이 수축하며 생기는 흠집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파손시켰습니다. 작품이 되지 못하면 그저 흙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잘 건조된 기물들은 가마에서 초벌을 거쳤습니다. 여덟 시간 불을 떼고, 꼬박 하루를 식힌 뒤에야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잘 나왔어요." "네, 잘 나왔어."

850도 안팎으로 떼는 초벌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진짜 승부는 그다음, 진사가 나오는 순간부터였습니다. 정성과 수고를 다해도 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5분 먼저 태어난 형, 평생을 지척에서

그날 오후, 광천씨의 형 광선씨가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5분 거리에 살며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아이, 깨끗해. 뭐, 한번 싹." "얼마나 깨끗해." "이렇게 해서 저거를 부대에다 담아다가 마늘 갖다 덮어 버릴게."

오자마자 일거리부터 찾는 형이었습니다. 동생의 일이라면 늘 두 팔 걷고 나섰습니다.

아내들끼리도 종종 헷갈렸습니다. 목소리도, 광대뼈 모양까지도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 신랑은 강대뼈가 좀 나왔었는데, 그걸 보고 알아봤어요."

5분이라는 시간의 차이는 컸습니다. 동생에게 형은 까마득한 존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형이 그렇게 크게 보인 거야. 형만은 그 동생 없다고 하잖아."

아버지는 새벽 네 시, 소줏골을 치러 나오는 소리로 아들을 깨우곤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그 소리를 놓치면 매를 맞았습니다. 흙과 재주가 많던 집안, 그 서슬 퍼런 새벽마저도 지금은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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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만 빚던 아들, 이제는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큰아들 수동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예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경력만 벌써 십오 년이었습니다.

"흙 농도는 잘 만난 거야." "조금 더 딱딱하게 해야 되는데."

아버지의 눈길은 아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따라갔습니다.

"내가 저기 뭐 가르쳐 주는 것뿐이 아니라, 나도 배워. 또 나도 배우는 게 있다고."

하지만 형편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수동씨는 인근 고춧가루 생산 공장에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안 하던 일을 하려고 하니까 몸이 아직 적응을 못 하는 거죠."

흙을 빚던 손으로 고춧가루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자, 마음을 굳혔습니다. 여기 와서 다양한 빨간색을 봤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가장 큰 건 이제 아버지한테 좀 힘이 되어야겠다는 거예요. 이제 이게 진짜 제 일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도자기는 불 속에서 단단해집니다. 아마 수동씨도 그럴 것입니다.

"그게 땅을 남겨 주시는 거보다, 돈을 남겨 주시는 거보다 훨씬 더 크게 남겨 주시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가마 앞에서 사흘, 그리고 지문 하나

전시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소나무 그림이 들어가는 큰 작품과 소품을 합쳐 서른 점 남짓, 그중 몇 점이 살아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붉은 안료를 손에 바르고, 자부심을 드러내는 단 한 점에만 지문을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문을 찍은 작품이 일곱 점밖에 안 돼요. 이 작품이 살아나오면 여덟 번째가 되는 거예요."

장작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 도공비 앞에서 헌다례를 올렸습니다. 도공들의 장인 정신과 혼을 위로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틀간 불을 떼고, 사흘을 식혀야 가마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가슴이 지금 두근두근했어."

가마문이 열렸습니다. 아들이 빚은 도깨비 자기는 모양 그대로 나왔습니다. 붉은빛 진사 도자기도 무사했습니다.

"진사, 요거 하나 성공해. 명작 하나 나왔네."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지문을 찍은 달항아리였습니다.

"밑면이 이렇게 손상이 되면, 이런 것들도 망치를 맞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망치를 든 손이 조마조마하게 떨렸습니다. 오늘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은 겨우 세 점뿐이었습니다.

마음을 잘라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곁에서 지켜보는 형의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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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엄마, 예순여섯 번째 생일

아내 영예씨의 예순여섯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 선물을 골랐습니다.

"아버지 마음에 든 색깔을 보면 안 되고, 엄마 마음으로 골라야지."

보라색 스카프와, 초 예순여섯 개를 꽂은 케이크가 준비됐습니다. 직접 선물을 사고 케이크를 고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수동 엄마."

오랜만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선물 상자 안에는 장갑 한 켤레가 들어 있었습니다.

평생 운전을 못 하는 남편 곁에서, 아내는 40년을 기사 노릇을 해 왔습니다. 새벽이든 밤이든, 부르면 달려가 태워 오는 일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사람 과정을 쭉 보면, 우리 제수씨가 너무 큰 역할을 해줬어. 정말 감사할 뿐이에요."

남자들이 표현을 잘 못하는 걸 알면서도,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우수숙련기술자, 그리고 스승의 집

며칠 뒤, 넥타이를 고르고 수염에도 힘을 준 아침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우수숙련기술자 증서를 받는 자리였습니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가는 중간 단계였습니다.

"이건 아내에게 주는 상장이나 다름없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형에게 가장 먼저 성적표를 내밀었습니다.

"큰일 했어, 아주 잘했어."

그리고 다음 날, 돌아가신 스승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문화재 화공이었던 이인호 선생은 9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기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운명하시기 세 시간 전, 스승은 전화를 걸어와 말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봉사 많이 하고 좋은 일 많이 해야 한다고.

"남의 그림을 모방하지 말고 창작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네가 앞으로 성공을 못 한다."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예술가는 장사꾼이 아니라던 스승의 말이 아직도 회초리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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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이 보이는 절벽, 그리고 다시 물레 앞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남한강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물에 잠겼던 자리가 세월을 지나 산자락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산천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전시회를 이틀 앞두고, 작품들이 무진동 탑차에 실려 서울로 향했습니다. 형은 자기 일처럼 짐을 날랐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물질적으로 어려울 때도, 형이 도움을 제일 많이 줬어요. 두 형제라는 게 버팀목이 되어 줘서, 별로 힘든 건 모르고 살아온 거예요."

나아갈 인생도 하나가 아닌 둘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가마 앞에서 사십칠 년, 아직도 어렵기만 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흙과 뒹굴며 평생을 배워야 할 일, 오늘도 광천씨는 물레 앞에 앉았습니다. 예술이라는 꽃길 같은 흙길, 그 길을 함께 걸어 준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때론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기다림으로 뜨거워지고 뜨거움으로 단단해지는 인생의 명작을, 그는 오늘도 빚고 있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수십 번의 실패에도 다시 물레 앞에 앉는 것일까요.

완성보다 그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음 시도의 재료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5분 먼저 태어난 형은 왜 평생 동생의 그림자처럼 살았을까요.

형제라는 이름은 때로 계산 없이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흙을 빚던 아들이 공장으로 향한 발걸음은 후퇴였을까요.

누군가에게는 우회처럼 보이는 길도, 당사자에게는 가족을 향한 가장 곧은 걸음일 수 있습니다.

출처: KBS 인간극장 "자기 멋에 산다" 예고편 방영분 (2026.07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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