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민서 씨가 시내로 나가 홀로 음악다방에 남은 상아 씨. 그런데,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온다!
방송일: 2026. 6. 16. | KBS 인간극장


- 새벽처럼 조용한 병원 복도, 결과를 기다리는 두 사람
- 15.3cm였던 종양이 7.7cm로 줄어들던 날의 표정
- 서울에서 삼척까지, 돌아오는 길의 별 없는 밤하늘
- 아프다고 가만히 있긴 싫다던 남편의 손
- LP판 앞에 앉아 틀고 싶은 노래가 아직 많은 사람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봄볕이 흐르고 있었지만 차 안은 다른 계절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가야 하는 날
몸에 이상을 감지한 건 작년 8월이었다. 자꾸 살이 빠지고 기운이 없었다. 상아 씨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처음 암이 발견됐을 때 종양은 너무 컸다. 간에만 세 개였다. 15.3cm, 3cm, 1cm, 4cm.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방사선 색전술을 받고 석 달이 지났다. 오늘은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는지, 아니면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지.
긴장으로요, 라고 말한 사람
병원 복도에서 상아 씨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남편이 곁에 있었다. 진찰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나왔다.
다만 7.7cm 중에 아직 살아 있는 암세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수술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
표정이 담담했다. 의사 선생님이 외과 선생님을 먼저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병원을 나왔다.
돌아오는 밤, 별이 없었다
삼척 동작골,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남편이 차에서 내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이거 또 집에 왔으니 별 한번 봅시다."
"없어."
"별이 오늘 날이야. 날이 흐름이구나."
"구름이 없네."
"어, 노래야."
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종일 집을 지키던 녀석이었다. 남편이 몸을 낮춰 머리를 쓸어줬다. 잠깐 잠깐 잠깐, 소리를 내며 달래는 손이 느렸다.
아까 얼마나 졸리는지 운전을 못 하겠더라고, 남편이 말했다.
상아 씨는 그러니까 왜 그렇게 긴장을 했냐고 물었다.
"내가 원래 새로운 거 할 때는 겁을 많이 먹어."
"아니 그래서 아까 나 그래서 뭐 얼마나 손을 꽉 쥐고 있는지 내 손 부러지는 줄 알았잖아."
아프다고 가만히 있긴 싫다
며칠이 지났다. 남편은 가게 옆 살림방에서 나무를 만지고 있었다. 병이 생기면서 나무를 예전처럼 다룰 수는 없게 됐다. 그래도 가끔은 만진다고 했다.
아내에게 화덕을 만들어 준 것도 남편이었다. 조금만 힘을 써도 쉬어가야 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움직였다. 쪽잠을 자야 버틸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무거운 걸 들 새도 없이 달려왔을 텐데.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재미가 없다고, 상아 씨는 말하지 않았다.
음악 다방 안에서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손님들이 왔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도 있었고, 한 시간 걸려 왔다는 이도 있었다. DJ는 음반을 찾아 걸어줬다.
LP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상아 씨가 음악 없이 살 수 없게 된 건 어릴 적 고물을 주워 팔아 음반을 사 모으던 때부터였다. DJ 자니 튠으로 살아온 50여 년. 들려줄 음악 이야기가 아직 많았다.
손님이 딸 사진을 들고 찾아온 날도 있었다. 다섯 살 때 조덕배 30집 모델이었다는 딸이 지금은 마흔셋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고 그 음반을 신청했더니 있었다고, 너무 반갑다고 했다.
왜 어떤 노래는 오래 남을까. 사람들은 왜 비슷한 계절이 오면 같은 노래를 찾아올까. 이 가게가 오래된 이유가 어쩌면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안에서는 김추자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이곳에선 여전히 반짝거렸다.
수술 이야기가 나오던 저녁
집으로 돌아온 저녁, 남편은 수술 날짜 걱정을 먼저 했다. 겨울에 했으면 좋겠는데 세상 일이란 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라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야 되니까. 딱 그거 한 가지예요."
상아 씨는 잠깐 말이 없다가 답했다.
"뭔가 나한테 숙제가 던져지면 그걸 해결하고 풀어 나가면 되니까. 이 사람이 굉장히 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었지만 집 불빛은 켜져 있었다. 내가 붙이면 항상 꺼진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늘 불을 붙여줘야 한다고, 나 없으면 불을 못 붙인다고.
음악 다방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LP판 한 장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늘이 마지막 홈을 지나도 두 사람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