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2026. 6. 10. 광현씨는 슈퍼맨 3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집 아이들은 언니 뒤를 따라다닌다

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1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2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3
울진 바닷가 작은 모텔을 혼자 운영하는 광현 씨 곁으로, 서울에서 큰딸 지은 씨가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집 아이들은 언니가 오면 온종일 뒤를 따라다닌다. 엄마가 남기고 간 인연이 이렇게 자라고 있었다.
  • 서울에서 울진으로 내려온 큰딸 지은, 어색함 없이 청소부터 시작한다
  • 갑오징어와 한치가 오르는 저녁 밥상, 말 없이도 따뜻한 남매 사이
  • 볼링장 내기, 지는 쪽도 웃는다
  • 떡볶이 냄비 앞에서 동생들 머리끈을 묶어주는 손
  • 엄마가 없는 자리를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채워가는 저녁

자주 내려오다 보니, 방도 마련해 두었다

계단을 오르면 지우 방이 있다. 평소엔 공부방이라 부르지만, 사춘기 소녀의 아지트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창문 밖으로는 울진 바다 냄새가 들어온다. 그 방 한쪽에 지은 씨 짐이 조금씩 늘어 있다. 자주 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자주 내려오다 보니 방도 마련해 두었다. 그 사이 살림살이도 많이 늘었다.

서울에서 동생이 왔다고, 광현 씨 주방에선 만찬 준비가 한창이다. 어젯밤 잡아온 갑오징어와 한치. 패뜨기엔 한치가 하루 지나면 식감이 강해진다고 했다. 갑오징어는 양이 적으니 숙회로. 광현 씨 손이 척척 움직인다.

취사병 출신이라 칼질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있으면 밖에서 하는 게 빠르다며 분담하는 거라고, 아들은 태연하게 말했다. 살가운 인사는 생략하는 쿨한 남매 사이. 맛있는 음식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 * *

밥은 먹었어?

밥상이 차려졌다. 유영이가 잡아온 오징어에 잔을 부딪혔다.

"치스, 치얼스."

"아, 이게 오빠가 잡아온 거예요?"

"고맙다."

지우는 과학 토론 대회 결과를 꺼냈다. 12등이라고. 잘했다는 말이 나왔다. 말이 많지 않은 윤씨, 원래도 없다고 누군가 대신 말했다. 같이 살 때도 거의 카톡으로만 그런 바이브였다고.

아들은 묵직해서 좋은 게 있고, 딸들은 그냥 오면 뭐 별거 안 해도 해피 바이러스가 있다고 광현 씨는 말했다. 자식들 입에 밥숟가락 들어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다더니.
* * *

3년째 내려올 때마다 일손을 도왔다

미역 작업이 있는 날, 광현 씨가 바다에 나간 사이 모텔 청소가 시작됐다. 지은 씨가 팔을 걷어붙였다. 침대 커버를 씌우는 손이 야무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화장실 청소 끝났어?"

"어, 끝났어. 닫으면 돼."

어차피 도와드리러 온 거라서, 빨리 끝내고 같이 쉬면 좋잖아요. 펜션을 하던 시절부터 울진에 내려오면 늘 일손을 도왔다고 했다.

여섯 살에 처음 만났다. 지은 씨 기억 속에 광현 씨는 항상 엄마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새벽에 출근하면서 전화하고, 점심때 또 하고, 퇴근 전에 또. 뭐 사 갈까 묻고, 집에 오면 엄마한테 가장 먼저 인사했다. 엄마를 그만큼 아껴 주셨으니까 저희까지도 아껴 주신 게 아닌가 싶다고, 지은 씨는 말했다. 저도 그만큼 잘해 드려야겠다는 그런 거라고.

아내가 첫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해 준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지은 씨도 알고 있다.

* * *

오늘 목적지는 볼링장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섰다. 광현 씨가 가게를 닫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자, 지아랑 아빠랑 편. 밥값내기라고 했지만, 이겨도 제가 사지 않을까 싶다고 지은 씨가 먼저 웃었다. 꼬마들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어른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뒷심이 무섭다는 말과 함께 큰 점수차로 지은 팀의 승리.

기계 오류가 두 번 있었다는 항의가 들어왔다.

"그것도 뭐, 운이죠."

거창한 행복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함께 웃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속에 행복이 있다.

* * *

떡볶이 냄비 앞에서

집으로 돌아온 저녁. 내기 턱은 떡볶이로 대신하기로 했다. 냄비가 오르는 사이 지은 씨가 동생 머리끈을 묶어줬다. 지아도 달라고 했다. 지우도 달라고 했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더 없이 살가운 남매지간이다.

동생들은 틈만 나면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도 들었다. 언니가 오지 않을 때도 서울에서 전화를 거의 매일 한다고 했다. 지우나 지하가 사 달라는 것은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고.

어렸을 때 놀러 왔던 기억들. 개곡 갈래, 놀이동산 갈래, 늘 그렇게 데리고 다녔다고. 엄마가 남기고 간 자리에 그 기억들이 쌓였다. 나중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더니, 엄마 핸드폰처럼 동생들 사진과 동영상밖에 없었다.

언니 좋아? 안 좋아?

"좋아."

"사랑해. 안 해?"

"어? 해. 해."

항상 뽀뽀를 받아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강제로 한다고 지은 씨가 말했다. 다리를 제압해 가지고.

엄마는 자매라는 소중한 인연을 선물해 주고 떠났다. 그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날 밤, 한밤중에 반가운 얼굴들이 또 찾아왔다. 문이 열렸다.
* * *
왜 어떤 관계는 피보다 더 진하게 느껴질까요.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청소를 하고, 함께 볼링공을 굴리다 보면. 그 시간들이 쌓여서 관계가 된다. 가족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동생들은 언니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게 될까요.
머리끈을 묶어주던 손. 떡볶이 냄비 앞에서 그릇에 담아주던 손. 말은 짧았지만, 그 손은 늘 먼저 움직였다.
엄마가 없는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채울 수 없다. 다만 그 자리 옆에, 다른 자리가 생길 수는 있다. 울진 2층 방처럼. 자주 오다 보니 마련하게 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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