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 씨의 생일을 맞아 조카 내외가 축하 파티를 위해 먼 곳에서 내려왔다. 가족들 품에 둘러 쌓인 광현 씨는 쑥스럽지만 내심 기쁘다.
방송일: 2026. 6. 11. | KBS 인간극장


- 먼 길을 달려와 양손 가득 짐을 풀어놓는 처조카 내외
- 서울에서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 등 하나 달았다는 말
- 몰래 쓴 편지,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완성한 두 장
- 케이크와 풍선, 광현 씨가 모르게 준비된 깜짝 파티
- 다음 날, 학교 바다 체험 학습에서 해남 아빠가 된 시간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
먹을 것을 잔뜩 사 들고 처조카 내외가 내려왔다. 이모부가 좋아하는 거라 또 사 왔다고 했다. 통대지 갈비, 스페어립. 마트를 통째로 털어온 것처럼 짐이 끝없이 나왔다.
이모부라고 부르지만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 있다가도 오라고 하면 나왔고, 친구들도 이제 이모, 이모부라고 부른다고 했다.
원래는 다 근처에 살았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보던 사이였다. 갑자기 울진으로 간다고 했을 때 엄청 말렸다고 했다. 가평으로 가려다가,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울진까지 왔다고 했다.
혼자서도 너무 잘하고 있는 사람
처조카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일이 많아서 외곽 운전을 많이 했고,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펜션을 하면서 늘 곁에 있고, 아이들 케어도 혼자 다 한다고 했다.
짧은 대화였다. 광현 씨는 그 말에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마음을 다해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등 하나 달았다는 전화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가 예정돼 있었다. 펜션을 오래 했던 광현 씨에게 불 피우는 일쯔음은 익숙했다. 한창 준비하던 중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였다.
광현 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저희 집에서 저 하나만 잘되면 다 잘 된다고, 어머니가 말했다고 했다. 광현 씨는 그 말을 전하며 웃었다.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쓴 편지
그 사이 지은 씨와 은경 씨는 시내에 다녀왔다. 양손이 두둑했다. 생일 케이크, 깜짝 서프라이즈 풍선, 아이들 간식.
깜짝 파티는 보안이 생명이었다. 아빠 눈을 피해 몰래 편지를 쓰려니 콩닥콩닥 마음이 바빴다.
지우가 글자 수를 셌다. 마흔일곱, 47. 생일이라 적은 숫자였다.
지하의 편지도 완성됐다. 파티 전까지 아빠가 못 보게 꽁꽁 숨겨두어야 했다.
여기 있고 싶다고 했다
고기를 손질하던 조카사위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모가 그렇게 되고 나서 광현 씨가 힘들어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직접 꺼내진 않지만, 서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생전에 가꿨던 텃밭을, 광현 씨는 여기서도 똑같이 가꿔놓았다. 엄청 튼튼하게, 잘 자란 채로.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을 만큼, 광현 씨의 사랑은 깊고도 짙었다고 했다. 그런 아내를 보내고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내가 남기고 간 선물 같은 아이들 덕분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파티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풍선을 불고. 저녁 손님을 보느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광현 씨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선물이 나왔다. 시계였다.
그리고 편지. 지우의 편지, 지하의 편지.
지우가 작년에 처음 선물을 했었다고 했다. 올해도 줄까 속으로 살짝 기대했었다고, 광현 씨가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마음을 담은 편지까지. 최고의 생일이었다.
해남 아빠의 바다 수업
다시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지우와 지하가 등교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바다 체험 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광현 씨도 잠수복을 챙겨 입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합쳐 23명뿐인 작은 학교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수업에 쓸 미역을 따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저학년인 지하와 친구들은 얕은 곳에서 미역을 만져봤다.
해남의 딸은 역시 달랐다. 지하가 실한 미역을 한아름 따왔다.
광현 씨도 망사리를 가득 채워왔다. 지하를 위해 작은 선물도 가져왔다. 꿀소라였다. 너무 작아서 먹을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챙겨왔다고 했다.
체험 학습이 끝난 뒤, 선생님이 말했다. 작년보다 아이들이 훨씬 좋아졌다고. 물질을 잘하시는 덕분에 학교 행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바다에서 파도와 씨름하고 나오면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은 뭘 먹어도 천국의 맛이었다.
점심시간, 광현 씨는 다시 가게로 달려가 주방을 지켰다. 손님이 몰려와도 인사를 제대로 못 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마저도 이해해 주는 사이라 고마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