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KBS 260610 방송 광현씨는 슈퍼맨3부 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

원본: https://www.youtube.com/watch?v=F68cTBTNfko

업로드일: 2026. 6. 10.

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썸네일
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1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2큰 딸 지윤이가 울진으로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장면3


경북 울진, 바다에 기대어 사는 남자의 집에 큰딸이 내려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방 한 칸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어떤 가족은 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서울에서 내려온 큰딸, 비어 있지 않은 방
  • 어젯밤 직접 잡아온 갑오징어와 한치가 오른 밥상
  • 말보다 밥으로 인사하는 남매 사이
  • 모텔 청소를 도우며 소매를 걷어붙이는 딸의 손
  • 볼링장에서 터진 웃음, 그리고 저녁의 떡볶이

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

울진 바닷가 마을, 아침 해가 미처 다 오르기 전부터 광현 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 물속에서 미역을 따고, 돌아와 모텔 청소를 돕고, 가게를 열고. 하루하루가 물결처럼 반복되는 그 집에, 오늘은 손님이 왔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은 씨가 짐을 풀기도 전에 방으로 먼저 올라갔다. 작은 방이었다. 책상 위에 동생 지우의 교과서가 쌓여 있었고, 벽에는 아직 떼지 않은 작년 달력이 붙어 있었다. 방학 때마다 올 때 쓰는 방이라고 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리가 있었다.

피로 이어진 사람들만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집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름을 굳이 찾는 사람은 이 집에 아무도 없었다.

어젯밤 바다가 차려 준 밥상

광현 씨가 전날 밤 직접 잡아온 갑오징어와 한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칼을 잡은 건 지은 씨였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군 복무 시절 취사병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있으면 굳이 주방에 안 들어가는데, 오늘은 자기가 하는 게 빠르다며 앞치마를 둘렀다.

한치는 하루가 지나면 식감이 너무 질겨진다고 했다. 갑오징어는 하루 지난 것도 숙회로 쓸 수 있는데, 양이 적어서 초무침으로 끓이기로 했다. 재료에 대해 설명하는 목소리가 조용하고 낮았다. 오래 이 바다 근처에서 산 사람의 말투였다.

살가운 인사 대신 맛있는 음식이 먼저 놓였다. "밥 먹읍시다. 핸드폰 좀 내려놓으시고." 아무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광현 씨가 술잔을 들었다. 지은 씨가 잔을 받았다. "오빠가 잡아온 거야." "고맙다." 짧은 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였다.

* * *

엄마의 자리에 이미 다른 온기가 있었다

지은 씨가 처음 광현 씨를 만난 건 여섯 살 때였다. 엄마가 재혼을 했고, 새 아버지는 이혼을 했고, 새 아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치 않았던 사람이 광현 씨였다고 지은 씨는 말했다.

새벽에 출근하면서 엄마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고 했다. 점심때 또 한 번. 퇴근 전에 또.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고 했다. 지은 씨는 그걸 곁에서 다 보고 자랐다. 엄마를 그만큼 아껴 주셨으니까, 저희까지도 아껴 주신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방학 때마다 내려오면 계곡에 갔고, 놀이동산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고, 후포 스카이워크도 갔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그냥 어딘가에 같이 갔다. 그 기억들이 쌓였다.

왜 어떤 사람은 오래 기억에 남는 걸까요. 아마도 특별한 말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늘 거기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텔 청소, 소매를 걷어붙이고

광현 씨가 바다에 나간 시간, 지은 씨는 모텔 청소를 혼자 시작했다. 침대 커버를 씌우는 손이 빠르고 야무졌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거의 3년째 오고 있습니다. 어차피 도와드리러 온 거라서, 빨리 끝내고 같이 쉬면 좋잖아요."

펜션을 하던 시절부터, 울진에 내려오면 일손을 도왔다고 했다. 놀러 온 것인지, 일하러 온 것인지 경계가 없었다. 경계를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화장실 청소가 끝났냐고 물었을 때, 지은 씨가 "어, 끝났어. 닫으면 돼" 하고 대답했다. 오래된 집에서 나누는 말 같았다.

* * *

볼링공이 구르는 동안

오후에 광현 씨가 가게 문을 걸어 잠갔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나섰다. 목적지는 볼링장이었다.

팀을 나눴다. 광현 씨와 지아. 지은 씨와 윤, 지우. 밥값 내기라고 했는데, 지은 씨는 이겨도 어차피 자기가 낼 것 같다고 했다.

지하가 공을 굴렸다. 힘없이 느리게 굴러가나 싶었는데 핀을 쓸어냈다. 오빠가 공을 던졌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꼬마들이 웃었다. 광현 씨도 웃었다. 레인 끝에서 핀이 넘어지는 소리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일하는 거보다 재밌죠." 광현 씨가 말했다. 어마무시하다고 했다. 거창한 행복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볼링 레인 위에, 이미 있었다.

떡볶이가 식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저녁, 지은 씨가 냄비를 올렸다. 서른파를 넣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동생들이 부엌 문가에 서서 냄비 안을 들여다봤다.

서울에서도 전화를 거의 매일 한다고 했다. 지우와 지하가 사 달라는 것들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고. 오늘 내기의 턱은 떡볶이로 대신하기로 했다.

엄마는 자매라는 소중한 인연을 선물해 주고 떠났다. 그 빈자리가 다른 방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지아가 매굽다고 했다. "맵지 않아" 하고 지은 씨가 말했다. 지아가 그래도 머리끈 달라고 했다. 지은 씨가 건네줬다. 동생들이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 말이면 고분고분 따랐다.

뽀뽀, 그리고 버스 미션

사진을 꺼냈다. 지아와 지하가 공주 옷을 입고 있는 오래된 사진. 2019년이라고 했다. 다섯 살 때였다.

지은 씨가 핸드폰에 동생들 사진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 핸드폰처럼이라고 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지하가 혼자 버스 타고 서울 가는 미션을 받았다. 다섯 시간을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물었다. 지은 씨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섯 시간 인내하면 서울에서 꿀 같은 플랜을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을게.

지하가 언니한테 뽀뽀를 했다. 강제라고 했다. 안 하면 다리를 제압한다고 했다. 지은 씨가 뽀뽀를 받았다. 매번 받아 주는 걸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

* * *

그날 밤, 가게 불이 꺼진 시간에 낯익은 얼굴들이 찾아왔다. 떠들썩한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광현 씨가 문을 열었다. 우편함 안의 딱새 새끼들은 그 사이 조금 더 자라 있었다.

왜 어떤 집은 문을 열어두는 걸까요.
방학 때마다 내려오면 방이 있었다고 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게 전부였을지도 모릅니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집 사람들은 그 질문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답을 정해 놓은 것처럼.
어떤 기억은 왜 그렇게 오래 남는 걸까요.
계곡에 같이 갔던 것, 볼링공이 굴러가던 것, 식기 전에 먹은 떡볶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함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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