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 - 경남 함양 이동 장터 72시간 |
방송일: 2026. 6. 30.


-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마을들이 있습니다
- 여든여덟, 여든아홉 어르신들이 트럭 소리를 기다립니다
- 곰에게 사과를 던져주었다는 이야기가 회관에서 오갑니다
- 아들과 따로 사는 어머니도 무언가는 사야 한다고 말합니다
- 다리가 아픈 이를 위해 간식을 챙기는 손이 있습니다
가파른 고갯길, 트럭 한 대가 오릅니다
엔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구간이 있습니다. 고갯길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앞유리 너머로 좁고 가파른 커브가 이어집니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자기 무게 때문에 몇 번이고 속도를 늦춥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으면 트럭은 아예 움직이지 못합니다. 길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기 때문입니다.
운전석에서는 앞선 사람에게 길 상황을 물어봅니다.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고서야 다시 바퀴가 굴러갑니다. 에어컨을 끄고 창을 열어야 넘을 수 있는 고개도 있습니다. 엔진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몇 개의 고비를 넘고서야, 트럭은 비탈길 끝에 닿습니다. 그 끝에서 장이 펼쳐집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그 트럭 안
트럭 짐칸에는 웬만한 가게 하나를 옮겨놓은 듯한 물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정해진 요일에만 오는 트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은 장날에는 조용하던 산골 마을도 모처럼 들썩입니다.
손을 흔들며 다가온 한 사람이 짐칸을 들여다봅니다.
"저 거시기는 안 가져왔어요?"
물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손짓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트럭 안 사람은 대충 알아듣고 필요한 것을 찾아냅니다.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그만큼 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든아홉, 트럭 소리에 문을 엽니다
트럭을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여든을 넘긴 어르신들입니다.
"나 이제 여든다섯인데."
누군가 그렇게 말을 꺼내면, 옆에서 곧장 나이 자랑이 이어집니다. 여든여덟, 여든아홉. 그중 누가 제일 나이가 많은지를 두고 웃음 섞인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오늘은 쌈장이 일찍 동났습니다. 트럭 안 사람이 다음 주에 다시 가져오겠다고 말하자, 한 어르신이 곁에서 사정을 거듭니다. 한 사람이 사면 다들 따라 사기 때문에, 많이 실었다 싶어도 금세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계란값도 화제에 오릅니다. 얼마 전보다 훌쩍 오른 가격에 다들 한마디씩 보탭니다. 쉽게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도 인기가 많습니다. 냉동칸이 열릴 때마다 손이 먼저 나갑니다.
가장 먼저 동나는 것은 꽈배기입니다. 첫 마을에서부터 불티나게 팔려 나갑니다.
"뒤에 다른 마을도 가야 되는데, 많이 실으라고 했잖아요."
그 말에 트럭 안 사람은 웃으며 한 봉지를 더 얹습니다.
곰이 사과를 던져주던 날
장이 파한 뒤, 발걸음은 자연스레 마을 회관으로 모입니다. 산 것들을 서로 꺼내 보이며 한바탕 웃음이 오갑니다.
그 자리에서 한 할머니가 지난 이야기를 꺼냅니다. 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자리가 조용해집니다.
같은 마을 어귀에는 얼마 전 이곳으로 옮겨 온 가족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1년을 살아보기로 하고 들어온 지 넉 달째입니다.
트럭이 도착했다는 말에 서둘러 나온 그녀는 이것저것 골라 담습니다. 옆에서 한 어르신이 대패를 가리키며 나무 깎는 도구라고 설명해 줍니다.
"몰라서도 못 샀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번집니다.
따로 사는 아들, 그래도 사야지
왜 어떤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까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사는지 묻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들은 같은 동네에서 따로 삽니다. 밥은 각자 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오늘 산 것들은 아들 몫까지 챙긴 것이라 합니다.
"사서 주려고."
짧은 말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콩밭 이야기도 나옵니다. 비둘기가 자꾸 콩을 파먹어서 며칠째 밭을 살피러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들이 다녀갈 때마다 뭐라도 들려 보내야 마음이 놓인다고 합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을 위해
사람들은 왜 비슷한 순간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다음 마을에서는 한 사람이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유독 많이 고릅니다. 누구랑 나눠 먹으려는 것인지 묻자, 다리가 불편한 이웃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장을 보러 나오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트럭이 오는 것처럼, 트럭 앞에 나온 사람들도 서로의 몫까지 챙깁니다.
짐을 다 실은 트럭이 다시 시동을 겁니다. 바퀴가 흙길 위로 굴러가고, 산 그림자가 그 위로 조금씩 길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