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 소리, 마지막 한 숟갈까지 따뜻함을 지켜주는 그릇. 바로 '뚝배기'죠. 하지만 이 묵직하고 투박한 그릇 하나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땀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시나요? 오늘은 EBS 골라듄다큐를 통해, 흙과 불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뚝배기 공장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만나봤습니다. 😥
EBS 골라듄다큐
(뚝배기 공장의 하루)
- 총 인원 6명이 한 달간 약 3만 개의 뚝배기를 생산하는 치열한 현장.
- 일반 흙이 아닌, 불에 직접 올려도 견디는 특수 흙 '내열토' 사용.
- 품질을 위해 기계 작업 속에서도 핵심 공정은 35년 장인의 손길로 완성.
- 보령 머드를 포함한 17가지 천연 재료로 만드는 공장 고유의 특제 유약.
- 1250도의 불길을 견뎌내고 비로소 단단한 뚝배기로 탄생하는 과정.
단 6명의 손길로 빚어내는 월 3만 개의 기적
규칙적인 기계 소음만이 공간을 채우는 곳.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정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시간과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 속에서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어요. 언뜻 보면 단순 반복 작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손놀림 하나하나에는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네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작업을 단 6명의 인원이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한 달에 생산하는 뚝배기 양이 무려 2만 7천 개에서 3만 개에 달한다고 해요. 하루 최대 생산량이 1천 개. 일주일을 꼬박 매달려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양이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만드는 뚝배기는 종류만 20가지가 넘는다고 해요. 1인용 달걀찜 뚝배기부터 넉넉한 전골용 뚝배기까지, 음식의 양과 용도에 따라 가장 쓸모 있게 만들어지는 것이죠. 👍
뚝배기 제작의 첫걸음은 단연 '흙'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공수해 온 흙을 공장 안으로 옮기는데, 다행히 지게차의 도움으로 큰 힘을 덜었어요. 하지만 이 흙, 우리가 아는 일반 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닐에 꽁꽁 싸여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요.
😥 "이게 뚝배기 만드는 흙이야. 일반 흙은 불에 올리면 못 쓰는데, 이거는 불에 올릴 수 있는 흙이라... 좀 비싸지."
솔직히 흙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생각했는데, '불에 올릴 수 있는 흙'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우리가 뚝배기를 가스레인지에 직접 올려 끓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특별한 흙, '내열토' 덕분이었네요.
일명 '내열토'라고 불리는 이 흙은 말 그대로 열에 강한 흙입니다. 보통 모래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뜨거운 불의 열기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이죠.
[팩트 체크]
내열토(耐熱土)는 일반 도자기 흙(점토)과 달리 '페탈라이트(Petalite)'나 '스포듀민(Spodumene)' 같은 리튬 광물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흙의 열팽창률을 극단적으로 낮춰주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의 직화처럼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깨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흙도 바로 사용할 수는 없어요. 흙 속의 수분과 입자를 균일하게 만들어주는 '토련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이미 1차 토련이 되어 온 흙이지만, 이곳에서는 품질을 위해 다시 한번 같은 과정을 반복해요. 일일이 토련기에 흙을 넣고, 뽑아내고, 옮기는 작업. 보기만 해도 힘든 이 번거로운 과정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거는 물건 찍기 전에 제일 처음 작업이거든요. 진동을 많이 해줄수록 물건이 더 잘 나와요. 마를 때도 더 잘 마르고요. 두세 번 해주면 좋죠."
결과물이 좋다는 걸 알기에 그만둘 수 없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죠. 묵직한 흙덩이를 계속 나르다 보면 온몸에 흙덩이만큼의 피로가 쌓입니다. 10kg가 넘는 흙덩이를 쉴 새 없이 나르는 작업자의 모습에서 고단함이 느껴졌어요. 😭
일정한 크기로 잘려 나오는 흙덩이는 작업자의 발길을 재촉합니다. 정해진 분량을 뽑아내기 전까지는 잠깐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아요. "떨어질 때마다 수시로 와서 계속 해줘야 돼요. 한 번에 미리 많이 못 만들어요. 공기 중에 흙이 마를 수도 있어서..." 힘든 작업 끝에 드디어 매끈하고 차지게 반죽된 흙. 흙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잘 토련된 흙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존재라고 하네요.
기계와 사람의 손이 빚어내는 완벽한 합작
토련 작업이 끝날 무렵, 다른 한쪽에서는 성형 작업이 한창입니다. 주문 들어온 뚝배기 틀을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놓는 것으로 다음 작업이 시작되죠. 이곳의 베스트 아이템이라는 '달걀찜용 뚝배기' 틀이 준비되었네요. 가정에서 한 끼 식사용으로 적당해서 인기가 많다고 해요.
가래떡처럼 길게 뽑아진 흙을 뚝배기 하나만큼의 양으로 툭툭 잘라냅니다. 그리고 정확한 양의 흙을 다시 잘 뭉쳐, 던지듯 틀 안에 '탁!'하고 집어넣어요. 그 다음 일은 기계가 맡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틀 안에서 흙이 눌리며 우리가 아는 뚝배기의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지만, 기계 덕분에 지금은 한결 일손을 덜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기계 앞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성형 작업하는 거예요. 트란에 흙을 넣고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거죠."
💡 기계가 만드는데 왜 사람이 필요할까?
모양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기계의 몫이지만, 그 전후 과정은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합니다. 흙을 자르고, 정확한 양을 틀 속에 던져 넣고, 완성된 틀을 옮기는 모든 과정이 사람의 몫이죠. 단순해 보이는 이 반복 작업도 내공이 쌓이면 속도부터 달라진다고 해요. 기계가 하는 일은 같아도, 그 전후 과정이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생산성 자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성형 작업이 끝난 뚝배기는 1차 건조 과정에 들어갑니다. 뚝배기의 강도를 높이고, 틀과 밀착된 흙을 쉽게 떼어내기 위한 과정이죠.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뚝배기를 틀에서 분리하는 일은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돼야 해요. 역시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1차 건조된 뚝배기는 다시 작업대에 올라 세심한 손길을 받아야 해요. "정형하는 거예요. 매끈해지라고. 지금 여기가 거칠잖아요."
가만히 보니 성형이 끝난 뚝배기의 가장자리가 날카롭고 거칠었어요. 이대로 구워지면 자칫 손을 다칠 수도 있겠죠. 35년 넘게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강석칠 사장님. 사장님에게는 그 어떤 도구도 훌륭한 연장이 됩니다. 각자 손에 익은 도구로 뚝배기의 거친 면을 매끄럽게 다듬어내요.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네요.
35년 세월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뚝배기. 사장님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가 없습니다. "아유, 하루 종일 이래 왔다 갔다 걸어봐요. 이게 가벼운 물건이 아니에요. 10kg 이상은 돼요. 그걸 하루 종일 반복하는 거죠." 힘들고 무겁다고만 생각했다면 결코 35년이란 세월을 버텨내지 못했을 겁니다. 😲
정형 작업이 마무리되면 또 다른 문이 열립니다. 바로 '건조장'이에요. "저녁부터 아침까지 건조를 시키는 거예요. 뚝배기가 됐든 도자기가 됐든 최고 생명은 건조예요. 건조를 얼마나 잘 시키느냐에 따라서 불량이 나오나 안 나오나 좌우해요."
모래 성분이 들어간 내열토는 특히 건조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가능한 자연 바람에 천천히 건조해야, 1250도가 넘는 뜨거운 불에도 부서지지 않고 단단한 모양을 갖출 수 있다고 해요.
보령 머드와 1250도 불길의 만남, 뚝배기의 완성
뚝배기가 마르는 동안, 강석칠 사장님이 어딘가로 향했어요. 바로 천연 바다 진흙, '머드'를 구하러 나선 겁니다. 2~3년 전에 채취되어 소금기가 완전히 빠진 양질의 보령 머드. 그런데 이 진흙으로 뭘 하려는 걸까요?
"유약에 쓰이는 거예요. 유약 만드는 데 첨가물로 들어가요."
창고에 보관된 머드는 염분뿐 아니라 수분도 많이 빠져 딱딱하게 굳어있었어요. 이걸 삽으로 퍼 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네요. 공장으로 옮겨진 머드를 보고 작업자분이 반갑게 달려 나옵니다. "머드 자체 성분에서 좋은 성분이 나왔어요. 옛날에 황토 웰빙 이런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보령 특산물인 머드로 만들면 어떻겠나 싶어서..."
👍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 특산물인 '보령 머드'를 유약의 주성분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이 놀라웠습니다. 웰빙까지 생각한 뚝배기라니, 더 믿음이 가는걸요?
유약은 뚝배기의 질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재료입니다. 이곳에서는 머드가 주성분으로 45%를 차지하고, 그 밖에 석회석, 황토, 활석 등 총 17가지의 자연 재료가 함께 배합된다고 해요. 이 배합 비율은 각 공장마다의 최고급 노하우겠죠. 유약 배합을 담당한 강의선 씨가 유독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날 유약의 상태는 아주 좋았어요!
유약이 준비되자, 잘 건조된 뚝배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열외 되는 뚝배기들이 보였어요. 자세히 보니 건조 과정에서 작은 틈이 생긴 것들이죠. "이 조금 깨진 건 가마에 들어가면 싹 벌어져요." 아깝지만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무사히 건조를 통과한 뚝배기들은 유약을 바르기 전 특별한 공정을 거칩니다. 바로 '양초'를 바르는 일이에요. "이게 초(양초)거든. 여기 굽(바닥)에 바르는 거야. 초가 묻으면 유약이 안 묻어요." 방수 효과가 있는 초는 유약도 거부합니다. 덕분에 뚝배기 바닥 굽이 깔끔하게 유지되어 작업이 쉬워진다고 해요.
드디어 유약을 바를 차례. 뚝배기에 자국이 남지 않아야 하기에 맨손으로 이루어집니다. 내열토 뚝배기는 그릇 자체에 미세한 공기 구멍이 많아서 유약도 훨씬 많이 흡수한다고 해요. "약이 진해요. 발라놓고 건져내면서 털어내지 않으면 한 군데는 많이 먹고 한 군데는 적게 먹을 수 있어요." 오로지 35년간 쌓인 손의 감각으로 유약의 양을 조절합니다.
유약을 바른 후, 굽에 묻은 유약을 다시 한번 꼼꼼히 닦아냅니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죠. 유약을 잔뜩 먹은 뚝배기는 한층 더 무거워져 작업자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35년 경력의 최수자 씨. "힘들죠. 무거우니까. 그래도 지겹다 생각은 안 해요. 출근해서 즐기고 들어가는 게 재밌는 거지." 종일 서서 일하는 고단함을 견디는 동안 젖먹이 아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말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어요.
정해진 면적에 최대한 많은 뚝배기를 쌓는 것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입니다. 층층이 쌓인 뚝배기가 마치 예술 작품처럼 근사해 보였네요.
❓ 1250도, 흙이 견뎌낼 수 있을까?
드디어 가마에 입성할 시간. 뚝배기로 쌓은 탑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마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섭씨 1250도가 훌쩍 넘는 불을 견뎌내는 것. 저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과연 뚝배기들은 무사할까요? 조금의 수분이나 틈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과정에서 모두 터져버리고 맙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뜨거운 불에 달궈진 뚝배기들이 드디어 바깥 구경을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마 안은 뜨거워요. "조금씩 열을 빼줘야지, 확 열면 깨져요." 섭씨 1250도의 고온을 견뎌낸 뚝배기는 새벽녘 가마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며 몸을 달랬습니다. 하지만 최저 온도가 섭씨 400도. 여전히 뜨거운 온도를 내리기 위해 또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열기가 남아있는 가마에서 드디어 뚝배기를 꺼냅니다. 공기처럼 검붉게 익은 뚝배기가 단단한 위용을 자랑하네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모습입니다.
뚝배기가 나오는 날은 일이 더 많은 날이에요. 밀려있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포장을 서둘러야 합니다. 손은 바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죠. "뿌듯했어. 물건 나가고 오면. 소비자가 구매해서 오래오래 잘 써야 될 텐데... 아니, 오래오래 잘 쓰면 안 되지. 팍팍 깨져야 또 사지. (웃음)" 사장님의 농담 속에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
자칫 깨지기 쉬운 뚝배기는 포장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소비자의 손에 배달되는 순간까지 무사해야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니까요. "지금 주문이 많이 밀려 있어요." 주문량이 많아지는 이맘때가 되면 배달 차량도 바빠집니다. 서울, 천안, 대전... 전국 각지로 뚝배기를 실어 나릅니다. 이제 막 뚝배기들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