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KBS 260608 방송 광현씨는 슈퍼맨 4부 17살 차이, 성도 다른 부자지간

바다에 나가 미역 따고, 식당에서 손님들 밥하고, 치킨집에서 닭 튀기고, 24시간이 모자란 남자, 광현 씨. 그가 이토록 열심히 사는 이유는?

방송일: 2026. 6. 8. | KBS 인간극장

바다에 나가 미역 따고, 식당에서 손님들 밥하고, 치킨 장면1바다에 나가 미역 따고, 식당에서 손님들 밥하고, 치킨 장면2바다에 나가 미역 따고, 식당에서 손님들 밥하고, 치킨 장면3
평생 서울에서 살던 남자가 바다에 뛰어들어 해남이 됐다. 아직 1년 반밖에 안 된 일이라고 했다. 무섭지 않냐고 물으면, 무섭다고 솔직하게 답하는 사람이었다.
  • 날씨가 안 좋으면 바다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는 솔직한 말
  • 해녀들과 함께 만든 해남해녀협회, 스무 명의 동료들
  • 녹아가는 미역 앞에서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
  • 17살 차이, 성도 다른 두 남자의 동거
  • 아내가 있었다면 함께 나눴을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

아직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

아침 일찍 바다로 나온 광현 씨. 날마다 보는 바다인데, 오늘따라 눈맞춤이 유난히 길었다.

차에서 잠수복을 꺼냈다. 동료의 것이었다. 지난번 작업 때 챙겨다 두고 깜빡했다고 했다. 해남이 된 지 이제 겨우 1년 반.

"날이 안 좋고 파도가 있으면, 바다에 들어갈 때 솔직히 조금 무섭긴 해요."

두려움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료가 물었다. 안티고 있냐고. 뿌리는 거.

"아, 그거 없어요."

동료들과 잠깐 웃음이 오갔다. 오늘 파도가 어땠는지, 어제 작업은 어땠는지. 일상적인 대화였다.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해남이 될 줄, 본인도 꿈에 몰랐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스무 명이 된 협회, 그리고 줄어드는 해녀들

이 분들이 해녀협회를 만들었고, 나중에 초대해 줘서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이 분들 덕분에 일이 많이 생겨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고 했다.

울진군에는 해녀해남학교가 생기고 교육도 생기면서, 그 기수들 위주로 해남해녀협회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스무 명 정도가 모여 있다고 했다.

해녀들이 고령화되면서 물질할 인력이 부족해졌다. 광현 씨 같은 지원자가 적지 않았다. 울진군은 학교를 통해 초보 해남들을 꾸준히 길러내고 있었다.
* * *

다 놓아버린 미역

목적지에 도착했다. 너울이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바닷속에는 미역이 가득했다. 갯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자연산 돌미역이었다. 사람 손으로 직접 뜯어야 하는 일이라, 곧 해녀들을 동원해 채취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온 광현 씨의 손에 미역이 한가득이었다.

"좋네."
"수심 깊은 데는 다 녹아버려서…"

한창 작업해야 할 시기인데 미역이 녹고 있다는 건 큰일이었다. 동료가 설명했다. 원래 미역은 이렇게 자라는데, 군소가 잎을 다 먹어버려서 이파리가 없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수온이 오르면서 바다 생태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에, 오늘은 이만 철수하기로 했다. 미역이 더 녹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따는 수밖에 없었다.

물에서 돌아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하고 점심 장사하러 가야지."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답사를 하든 미역을 따든, 불러주는 대로 달려갔지만 아직 돈벌이가 되진 않는다고 했다.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거죠. 올해는 그래도 전화가 오고, 해 달라는 데가 좀 있어서요."

두 사람이 다 하는 구조

서둘러 도착한 곳은 작은 모텔이었다. 광현 씨가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해남 동료들에게 씻을 곳을 내어주고, 곧장 주방으로 달려갔다. 모텔 1층에 딸린 작은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들이닥칠 시간이라 엉덩이 붙일 틈이 없었다. 차가운 바닷물과 씨름하다 온 뒤엔 뜨끈한 부대찌개가 제격이었다.

"오전에 바다 일 그렇게 하시고 와서 또 장사하시고. 슈퍼맨이세요, 진짜."
"끝나면 엄청 몸이 힘들거든요. 그래도 끝나고 식당일 하시고. 체력도 정신력도 엄지 척이에요."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겐 저마다의 이유와 동력이 있다. 힘들고 고단해도 광현 씨가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애들 때문에 더 열심히 하는 거지. 저 혼자면 그렇게 돈 많이 필요 없잖아요. 못 해주는 마음 쓸데없는 건 안 해줘도, 필요한 건 못 해주지는 않으려고요."
* * *

17살 차이, 성도 다른 동거인

모텔 1층 살림집. 두 딸이 학교에서 만든 걸 자랑했다.

"이게 뭐야?"
"유리병 깨진 거 아니야? 바다에 떨어져 있던 유리?"

광현 씨는 두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네 살 연상이었던 아내 연화 씨는 둘째 지하를 낳고 첫돌이 다가올 무렵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씩씩하게 싸웠지만, 5년 전 가족들 곁을 떠났다.

서울에 살 때는 직장 일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했다. 여기로 오면서 딱 하나 정해둔 게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내가 집에 있는 것. 그게 가장 컸다고 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다른 행복의 잣대가 있다. 광현 씨에게는 그것이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코로나가 데려다 놓은 자리

울진에 내려온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제일 큰 이유는 코로나였다고 했다. 학교나 학원에서 확진자가 생기면 전화가 왔다. 일하다 데리러 가면, 아이들은 늘 꼴찌까지 남아 있었다.

형이 펜션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평일엔 아이들과 있고, 주말에 바쁜 건 어쩔 수 없다고. 그 얘기를 듣고 한 3개월 만에 울진으로 내려왔다.

처음엔 펜션을 열었지만 어려움이 많아 작년 가을에 정리했다. 때마침 이 모텔을 발견했고, 임대해 운영하게 됐다.

* * *

잡아온 한치, 그리고 큰아들

"윤혁아, 흑설탕 하나 사 와야 될 거 같아. 참기름 큰 거 있으면 그것도."

누구냐고 묻는 말에 광현 씨가 대답했다.

"그냥 우리 큰아들이요. 없으면 솔직히 좀 힘들겠죠."

농담식으로 일할 때 있으면 가도 괜찮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은 이 생활이 너무 재밌다고 한다고. 상가도 없고, 이런 생활에 적응해버릴까 봐 조금 걱정된다고 했다.

어젯밤 안 나갈 것처럼 굴더니 결국 나가서 한치와 갑오징어를 잡아왔다.

"세 마리랑 두세 마리. 그거 잡아서 뭐 해줄 거야?"
"숙회로 해줄게요. 물에 담갔다 빼는 거."

윤혁 씨는 광현 씨가 울진에 올 때 따라 내려왔다.

걱정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직장을 갖는 게 맞지 않냐고. 그런데 큰 생각 없이 살다가, 자리 잡을 시기가 되면 알아서 자리 잡지 않겠냐고 했다고.

17살 차이, 성도 다른 두 남자가 살아가는 법

식당 영업 준비가 끝나면 객실 청소가 이어진다. "이거는 내가 할게. 너는 저거 하고 내려가." 누가 뭘 해야 한다는 정해진 역할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 하는 구조였다.

국토 종주를 하는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9월부터 시작했는데, 1월부터 3월까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날이 추워서 손님이 없어, 윤혁 씨와 둘이서 하루에 한 팀도 못 받는 날도 있었다. 날씨가 풀리면서 요즘은 그럭저럭 손님이 든다고 했다.

할 일을 다 마치고서야 늦은 끼니를 때운다. 가게 메뉴가 그대로 두 사람의 밥상이 된다.

17살 차이, 성도 다른 이상한 부자지간. 윤혁 씨는 광현 씨 아내가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피를 나누는 대신 마음을 나눴다.

윤혁 씨가 처음 광현 씨를 만난 건 2009년, 초등학교 3, 4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겨울방학마다 와서 길게는 방학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고 했다. 동생들도 다 잘 따랐다고 했다. 자고 있으면 옆에 와서 같이 누워 자곤 했다고.

* * *

풀만 잡히는 밤바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윤혁 씨가 다시 바다로 나섰다.

"조심히 갔다 오십시오."
"조심하시고."

울진에 정착한 후 윤혁 씨는 바다 낚시에 취미를 붙였다. 갑오징어 소식이 들려와서 잡으러 나선다고 했다. 안 잡히면 다른 거라도.

풀이야. 풀, 풀, 풀. 자꾸 걸린다. 겁나 큰 건데. 바닥을 긁으면 가끔 해삼이 올라온다고 했다. 오늘은 횡재수가 있었는지, 줄을 던지자마자 큼지막한 해삼이 걸렸다.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면, 이런 즐거움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여전히 그립고 아쉬웠다.

"뭐 할 때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항상 나죠. 저는 그래도 엄마를 오래 봤잖아요."

엄마를 잃은 것과, 배우자를 잃은 것. 슬픔의 크기는 다를 거라고 윤혁 씨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더 슬펐을 거라고.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왜 계속 바다에 들어가는 걸까요.
아직 1년 반밖에 안 됐다고 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하는 거라고도 했습니다. 무서움과 책임감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두 사람은 역할을 나누지 않을까요.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 한다고 했습니다. 17살 차이, 성도 다른 두 사람이 사는 법이었습니다.
곁에 없는 사람은 왜 계속 떠오를까요.
해삼을 낚아 올린 순간에도, 그 사람이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즐거운 순간일수록,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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