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김에 - 김해 외국인 거리 72시간 |
방송일: 2026. 6. 9.


- 두 살 때 한국에 건너와 한국말이 더 편한 청년이 있습니다
- 주말마다 닭을 스무 마리씩 사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구레나루를 밀지 않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미용실이 있습니다
- 일요일에만 줄이 길어지는 은행 창구가 있습니다
- 마흔 살까지만 여기 있자고 약속한 부부가 있습니다
골목 끝에서 시작되는 냄새
해가 뉘엿해질 무렵이면 그 골목에는 낯선 냄새가 먼저 도착합니다. 갓 구운 빵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뒤섞여 좁은 통로를 채우고, 간판마다 적힌 글자는 한글보다 낯선 문자가 더 많습니다.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는 퇴근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습니다. 손에는 봉지가 들려 있고, 봉지 안에서는 각자 다른 나라의 저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0년대 들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리라고 합니다. 처음엔 몇몇 가게로 시작했던 골목이, 지금은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과 네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러시아까지 열 개가 넘는 나라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거리가 생겨났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람이 먹을 것이 필요했고, 먹을 것이 있는 곳에 사람이 다시 모였습니다.
두 살에 건너온 말
한 음식점 주방에서 볶음밥 비슷한 요리를 만들던 청년에게 한국말을 아느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한국말 할 거 알아요?"
"어, 어. 한국말 이렇게 잘해요."
"아니, 어릴 때부터 왔어."
"몇 살 때 왔는데?"
"두 살 때."
두 살. 그 나이에 건너온 사람에게 한국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그냥 말입니다. 청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팬을 흔들며, 자신이 만드는 음식이 지역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맛을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료를 파는 옆 마트에는 더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마늘보다 작은 양파가 진열대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양파가 아니라 베트남에서 건너온 품종이라고 합니다. 통로를 따라가면 태국 코너가, 그 옆에는 중국 코너가, 또 그 옆에는 한국 코너가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낯선 식재료지만,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한 조각입니다. 마트 진열대가 곧 세계지도인 셈입니다.
닭 스무 마리, 한 봉지의 무게
주말 오후가 되면 오래된 전통시장 골목이 갑자기 분주해집니다. 평일에는 조용하던 통로가 사람들로 가득 차고, 다들 양손 가득 봉지를 든 채 어딘가로 향합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관광객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부분 이 지역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채소를 한아름 사 가는 것은 물론이고, 닭은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라 스무 마리씩 사 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숙소에 함께 사는 동료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가면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계산이 그 안에 있습니다.
정육점 한쪽 벽에는 낯선 문자로 손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쓴 안내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위가 어떤 요리에 맞는지, 같은 나라 손님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적어둔 것입니다. 사장님은 그 종이를 굳이 떼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 시장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일까요. 물건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시장에 오면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오랜만에 모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시장이 장을 보는 곳이면서 동시에 만남의 장소가 되는 이유입니다.
구레나루를 남기는 이유
골목 안쪽 작은 미용실에는 주말마다 유독 손님이 몰립니다. 원장님은 이 구역에서 패셔니스타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평일에는 수수하던 차림이 주말이면 확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은 간단했습니다. 주말에 놀러 오는 외국인 친구들이 패션에 민감하기 때문에, 원장님도 그에 맞춰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단골 중에는 10년 넘게 다닌 손님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 쌓인 믿음이 있었기에, 원장님은 손님의 종교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요구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운 규칙 하나가, 지금은 당연한 절차가 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공간에서 만날 때,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대개 그 실수를 겪은 쪽입니다.
이 골목 사람들에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이 줄면 이 거리의 가게들도 함께 어려워진다고, 원장님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창구
평일보다 일요일이 더 바쁜 곳이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문을 여는 은행입니다.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대기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습니다.
평일에는 일터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유일하게 은행에 들를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한국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는 손님도,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한국어가 서툰 손님을 위해 번역기를 켜두고 있었습니다. 번역기에도 나오지 않는 언어는 손님이 직접 휴대폰으로 문장을 적어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서로의 말을 확인하며, 하루치 업무가 쌓여갔습니다.
은행 근처 지원센터에서는 또 다른 상담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사업장이 문을 닫은 경우,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까지, 이곳은 그런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돈을 보내는 것일까요.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골목의 많은 이들에게, 여기서의 하루는 결국 고향에 있는 가족을 위한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마흔이 되면 돌아갈 계획
주말 외식을 나온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동안, 부모는 오랜만에 나온 외식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해서 여기 오게 된 거예요?"
"저는 학생으로 왔고요, 지금은 대학원이에요."
"그럼 한국 와서 결혼하신 거예요?"
"한국에서 만났고, 고향에 갔다가 결혼하고 다시 같이 돌아왔어요."
부부는 둘이서만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다른 부모들처럼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남편에게는 가끔 부러운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둘의 계획은 분명했습니다. 마흔 살까지는 한국에 머물며 돈을 모으고, 그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서툴게 시작한 타향살이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앞으로의 그림이 이미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남편이 서툰 한국어로 꺼내자, 아내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말을 정확히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늘어나는 숫자, 조용한 저녁
지원센터 한쪽에서는 안전 교육이 한창이었습니다. 기계와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그림과 손짓으로 위험한 상황을 설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교실에서는 한국어 수업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2017년 무렵부터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습니다. 숫자는 매해 조금씩 달라졌지만, 늘어나는 방향만큼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향도 다르고, 한국에 머문 시간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마음만큼은, 누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면 골목의 불빛이 하나둘 켜집니다. 낮의 분주함은 가라앉고,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만 낮게 이어집니다. 그 소리 위로,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가 조용히 저물어 갑니다.